고전 인문학과 현대 비즈니스

고전에서 찾은 위기대응 리더십 전략

forget-me-not2 2025. 7. 10. 09:32

현대 기업은 매일같이 위기와 마주합니다. 급변하는 시장, 기술 혁신, 글로벌 정세, 팬데믹 같은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리더는 끊임없이 예측과 판단, 결단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 대응은 단순한 즉흥 처방이나 경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기업을 이끄는 철학, 사람을 다루는 지혜, 구조를 정비하는 안목, 모두가 리더십의 본질입니다. 이런 점에서 조선의 실학자 율곡 이이의 '경세론(經世論)'은 현대 기업 경영자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율곡은 현실을 직시하고, 혼란한 국가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철저하게 실용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개혁안을 제시한 정치철학자였습니다. 그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이라는 이상을 통해 국가를 살리는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이는 현대 기업의 위기관리 원칙으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여 지금부터는 율곡의 경세 사상을 기반으로, 위기에 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리더의 다섯 가지 전략을 현대 기업 사례에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선제적 시스템이 핵심이다

고전과 위기대응 리더십 전략

율곡은 평상시의 관리와 대비가 국가 위기의 발생 여부를 좌우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국가는 곧 사람이다. 사람을 쓰지 못하면 일도 무너지고 법도 무용지물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곧 위기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방만함, 구조적 결함, 관리 부재가 누적된 결과임을 뜻합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리더의 통찰력보다는 그간 구축한 시스템과 대응력입니다. JP모건체이스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과감한 자산 절감과 리스크 헤지 전략으로 가장 안정적인 은행으로 떠올랐습니다. CEO 제이미 다이먼은 위기 전부터 "최악을 상정하고 대비하라"는 경영 철학을 강조했고, 그 결과 타 은행들과 달리 대규모 손실 없이 금융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율곡이 말한 ‘예방과 대비’는 오늘날 비즈니스에서도 시스템의 설계와 운영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재난은 평시에 기획되고, 위기는 시스템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

율곡의 경세론은 ‘이상’보다 ‘현실’을 중시합니다. 그는 “현실을 모르고 말을 잘한다고 해서 정치를 잘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냉철한 분석력과 실행력을 뜻합니다. 기업 리더가 위기 속에서 길을 잃는 이유는 대부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 산업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기 확증 편향, 다른 하나는 실행 가능한 전략 없이 방향 없는 대책만 나열하는 추상적 대응입니다. 이런 점에서 월마트는 빅테크 기업에 비해 전통 유통업체였지만,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비대면 소비 흐름을 읽고 곧바로 디지털 유통망을 확대하며 반전을 이뤄냈습니다. 경쟁업체가 매장을 정리하고 후퇴할 때, 월마트는 앱 사용자 기반 확대, 드라이브픽업 서비스, 전용 물류센터 개설 등 실질적 대응 전략을 실행하며 e커머스 기업으로 진화했습니다. 율곡이 말한 ‘실사구시’는 데이터 분석, 고객 이해, 실행 로드맵 작성과 같은 구체적인 기업 전략으로 현대화되어야 합니다.

 

리더의 신뢰성과 투명한 소통

율곡은 정치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임금이 신하를 의심하면 나라가 흔들리고, 백성이 임금을 의심하면 정치가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조직에서도 위기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특히 기업이 위기 국면에서 신뢰를 회복하거나 유지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물론 내부 결속도 붕괴됩니다. GM은 2014년 차량 점화장치 결함을 은폐했다가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CEO 메리 바라가 사건 초기부터 대국민 사과, 내부 고발 보호, 품질 개선 계획 발표 등을 투명하게 진행하며, 기존 리더십과는 다른 신뢰 회복 전략으로 사태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내부 직원에게 진심을 전하고, 고객에게 책임을 지는 리더십은 위기 시점에서 리더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율곡은 권위보다는 정직함, 형식보다는 신뢰를 중시했습니다. 위기 속 리더는 판단 이전에 신뢰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체질 개선과 구조 혁신

율곡은 한시적 처방보다 제도적 개혁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10만 양병설, 수미법, 교육 개혁안 등을 통해 조선 사회의 뿌리부터 바꾸려 했습니다. 이는 단기적 수습보다 장기적 체질 개선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업도 위기 이후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다음 위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 사업의 종말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전환했습니다. 더 나아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콘텐츠 생산자이자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위기를 단순히 견디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기회로 활용한 것입니다. 율곡의 “급한 불은 껐지만 땔감은 그대로 둔 꼴”이라는 비판은 오늘날의 기업에도 유효하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위기는 어제의 방식에서 비롯되고, 내일의 위기는 오늘의 미봉책에서 태어납니다.

 

사람 중심의 지속 가능 전략

율곡은 "인재가 없다면 정책도, 제도도, 미래도 없다"고 하며 인재 중심의 국가 경영을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기업의 위기관리 역시 결국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빠르게 판단하고 실행하는 인재, 위기 속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중간관리자, 고객과 최전선에서 소통하는 현장 직원 모두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주체라 할 수 있습니다. 토요타는 전통적으로 ‘현장주의’와 ‘개선문화(카이젠)’를 중시해 왔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공급망 마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복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탄탄한 현장 인재 조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하청업체와도 장기적 관계를 구축해 위기 시에도 협력체계가 유지됐고, 인재에 대한 신뢰가 그 시스템을 움직였습니다. 율곡이 말한 인재란 단지 학문을 잘하는 자가 아니라, 현실을 알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에서 결정된 할 수 있습니다.

 

경세치용의 철학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율곡 이이의 경세철학은 단지 옛 유학자의 사유를 넘어서, 오늘날 기업과 조직이 마주한 현실적 과제에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리더란 누구보다 먼저 위기를 감지하고, 누구보다 앞서 책임지며, 누구보다 깊이 사람을 존중하는 존재입니다. 위기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지는 결국 리더의 철학과 조직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고전은 단순한 옛 기록이 아니라,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낸 본질의 언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입니다. 경영의 도구보다 중요한 것은, 경세치용의 철학에서 출발한 통찰입니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어떤 철학 위에 서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