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중심 경영은 현대 기업이 가장 많이 채택하는 경영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수치로 결과를 평가하며, 보상과 승진을 수치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은 효율적이고 공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과 중심 경영은 자칫 조직 내 무리한 경쟁을 유도하거나, 단기 이익만을 좇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조직에서 성과에 대한 집착이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윤리적 기준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이처럼 성과주의 시스템은 잘 설계되고 운용되면 강력한 도구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직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리스크 요소가 됩니다. 이때 참고할 수 있는 고전 철학이 바로 한비자의 법치 사상입니다.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평가받는 한비자는, 사람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와 규칙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부터 성과 중심 기업이 흔히 빠지는 리스크를 한비자의 통치 원칙을 통해 해석하고, 효과적인 관리 방안을 모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도와 규칙이 리더의 신뢰를 지켜준다
한비자의 핵심 사상은 “법(法), 술(術), 세(勢)”로 요약됩니다. 이 중 ‘법’은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는 공정한 규칙, 곧 제도입니다. 그는 “도를 따르되 법이 없으면 혼란하고, 법이 있으되 시행하지 않으면 망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제도가 있어도 실제로 운영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현대 기업에서 성과 중심 문화를 도입할 때 가장 흔한 실수는 ‘룰이 있으나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과 평가 기준은 있으나 사내 정치나 인맥이 더 크게 작용하거나, 조직 내 고성과자가 규율을 어겨도 묵인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조직 구성원은 ‘성과가 아닌 편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되고, 결국 조직 내 윤리는 무너집니다. 한비자는 이 같은 사태를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그는 “신하의 능력보다 법이 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직 리더의 친분이나 감정보다 제도가 먼저 작동해야 조직 내 신뢰가 유지됩니다. 성과주의 시스템일수록 평가 기준과 그 집행이 투명하고 일관되어야 하며, 리더는 그 안에서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습관’을 체화해야 합니다.
사람을 믿기보다 시스템을 설계하라
한비자는 인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관적인 관점을 가졌습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좇고 해를 피한다”고 말하며,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기에 그 선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냉정한 통찰은 경영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아무리 능력 있고 성실한 구성원이라도, 시스템이 허술하거나 유혹이 많은 구조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겪을 수 있습니다. 성과 중심 기업이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보상이 크면 클수록, 기준이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구성원은 '숫자를 만드는' 데 몰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보고 누락, 수치 조작, 책임 회피 등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이는 결국 기업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약화시킵니다.
한비자는 “도덕은 교육으로 가능하지만, 제도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성과 중심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유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구조, 예측 가능한 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프로세스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즉, 사람을 믿기보다 사람이 실수하거나 욕심을 낼 수 있는 상황을 설계 단계에서 차단하는 것이 진정한 리스크 관리입니다.
리더는 카리스마보다 제도를 지켜야 한다
현대 기업의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을 이끄는 ‘카리스마형’이 주목받습니다. 하지만 한비자는 전혀 다른 리더상을 제시합니다. 그는 “군주가 법에 따르지 않으면 백성은 혼란에 빠진다”고 말하며, 리더가 먼저 원칙을 지키는 것이 통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기업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리더가 성과를 위해 편법을 용인하거나, 내부 규율을 스스로 무시한다면 조직 전체는 곧 무질서에 빠집니다. 특히 성과 중심 기업일수록 리더의 기준과 행동은 조직 구성원에게 매우 강한 메시지를 줍니다.
한비자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통치하라”고 했습니다. 즉, 리더는 규정을 지키는 모범이 되어야 하며, 성과 평가나 보상 체계 운영에서도 원칙 중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인기보다 공정을, 관계보다 제도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조직 내 신뢰를 만들고, 결국 이는 장기적인 성과로 이어집니다. 리더가 따뜻함보다는 공정함으로 조직을 대할 때, 조직은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중심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실적 중심 조직일수록 윤리 기준은 더 강화돼야 한다
성과 중심 기업에서는 경쟁이 격화될수록 윤리적 기준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은밀하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작은 보고 누락이나 수치 왜곡이 반복되면서 조직의 도덕성이 점점 무뎌지고, 어느 순간 대형 사고로 번지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금융 사고, 내부 고발 사례는 강력한 성과 압박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한비자는 이를 '작은 구멍이 큰 배를 침몰시킨다'는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작은 법이라도 어기게 하면, 큰 죄도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즉, 사소한 규율이라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성과 중심 시스템은 불가피하게 압박과 경쟁을 유발합니다. 따라서 윤리 기준은 오히려 더 강력하고 선제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예컨대, 내부 고발 보호 시스템, 정기적인 윤리 점검, 비윤리 행위에 대한 명확한 징계 기준 등이 필요합니다. 성과를 추구하면서도 윤리를 지키는 조직이야말로, 신뢰와 실적을 함께 이룰 수 있습니다.
한비자의 현실주의가 위기 대응 전략의 핵심이 된다
한비자는 유가(儒家)의 이상주의를 비판하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라가 혼란한 것은 군주가 사람을 좋게 보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감정적 관계나 낙관적 판단이 리더의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고는 위기 대응에서도 매우 유효합니다. 기업이 위기를 겪는 결정적 순간은 대부분 ‘인간적인 판단’을 지나치게 믿었을 때 발생합니다. 고객 데이터 유출, 내부 횡령, 기술 유실 등은 결국 사람이 일으킨 문제이며, 그 근저에는 허술한 통제 시스템이 있습니다. 한비자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이 아니라 제도'로 대응할 것을 일관되게 강조했습니다.
성과 중심 기업은 특히 실적 저하나 외부 위기 상황에서 감정적 의사결정을 하기 쉽습니다. 한비자의 지혜는 이런 순간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내부 규칙을 점검하고, 감정보다 수치를, 신뢰보다 원칙을 우선해야 합니다. 감정은 리더의 약점이 될 수 있고, 원칙은 조직의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법이 살아 있는 조직만이 지속 가능하다
한비자의 법치 사상은 단순한 통제의 논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현실을 바탕으로 조직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되기 위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철학입니다. 성과 중심 기업은 이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설계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감정보다 원칙을, 실적보다 구조를 믿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한비자는 차갑지만 현실적이며, 그래서 오늘날의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통찰을 줍니다. 고전 인문학은 도덕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 운영의 현실을 꿰뚫는 실전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 인문학과 현대 비즈니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에서 찾은 위기대응 리더십 전략 (0) | 2025.07.10 |
---|---|
주자의 철학에서 배우는 자기관리와 조직 리더십의 원칙 (0) | 2025.07.09 |
고전 인문학이 가르쳐주는 진짜 ‘고객 제일주의’의 의미 (0) | 2025.07.09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우는 협력적 조직문화 (0) | 2025.07.08 |
고전 인문학으로 만드는 지속 가능한 기업문화 (0) | 2025.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