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인문학과 현대 비즈니스

예기의 예절 철학으로 설계하는 온보딩과 조직문화 전략

forget-me-not2 2025. 7. 13. 10:17

조직 내 모든 관계는 첫인상과 초기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신규 입사자가 조직에 들어와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회사의 가치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과의 태도, 말투, 환대 방식입니다. 이 지점에서 『예기(禮記)』가 강조하는 예절의 의미는 단순한 인사법이나 격식을 넘어, 관계의 토대를 세우는 문화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예기는 인간관계가 무질서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예’라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과 이해관계가 얽히기 쉬운 업무 환경 속에서 예는 일종의 관계적 완충 장치이자 상호 존중을 체화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는 특히 온보딩과 같은 초기 관계 형성 구간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합니다.

 

조직의 안정감은 정서적 환대에서 비롯됩니다

많은 조직이 온보딩 매뉴얼과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정보 전달'에는 성공하지만, 정작 신입 구성원이 느끼는 심리적 소외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예기에서는 예를 통해 상대가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단지 예를 갖춘 인사나 절차가 아닌, 상대를 사람으로 존중하고 환영하는 태도가 예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신입 구성원이 처음 출근했을 때 상사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주변 동료들이 사소한 질문에도 친절히 응답하는 태도는 작은 것 같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환영받고 있다"는 정서적 신호는 그 어떤 조직 홍보 자료보다 효과적입니다. 또한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거나, 퇴근 전 인사를 건네는 행동들은 정서적 안전감과 조직 소속감을 강화하는 실천적 예절입니다. 이처럼 예는 심리적 안정감과 관계적 신뢰의 초석이자, 구성원의 적응 속도와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기제가 됩니다. 이는 조직문화가 단순한 규칙이나 정책이 아니라, 사람 간 관계 속에서 체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중의 언어는 협업의 질을 결정합니다

예기는 인간 사이의 질서를 강조하지만, 그것은 위계의 고착이 아닌 역할에 맞는 책임과 태도를 조율하는 방식입니다. 각자의 위치를 분명히 하되, 그 위치에 따른 배려와 존중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예의 핵심입니다.

예기의 철학으로 설계하는 온보딩과 조직문화


온보딩 단계에서 선배 구성원이 후배에게 명확하게 업무 지침을 주는 것, 피드백을 줄 때 "너는 잘못했어"가 아닌 "이 부분은 이렇게 해보면 더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은 관계의 예절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기에 더해, 신입 구성원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경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피드백을 주는 태도 또한 협업 문화를 뿌리내리게 합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상호 존중의 커뮤니케이션은 조직 전반의 심리적 안정과 소통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됩니다. 이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협업과 신뢰 형성에 훨씬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환영의 방식은 조직의 품격을 드러냅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방식은 그 집의 문화 수준을 나타냅니다. 예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빈객지례(賓客之禮)는 타인을 환대하는 방식이 곧 그 공동체의 성숙도를 보여준다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신입 구성원을 손님이 아닌 곧 가족이 될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기업의 태도는 단지 환영을 넘어서,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존중과 기대를 표현하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온보딩 키트, 조직문화 안내서, 1:1 멘토링 제도 등을 통해 신규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관계망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한 기업의 사례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Stripe)는  온보딩 첫날에 회사의 기술 문서보다 문화와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먼저 공유합니다. 이는 말과 행동이 일치한 조직 언어가 공통된 정체성과 소속감의 시작점이 됨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는 토스(Toss) 또한 온보딩 첫 주 동안 신입 직원에게 CEO가 직접 브리핑을 진행하고, 각 팀원이 차례로 환영 메시지를 보내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환영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예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 관계 형성의 일환임을 보여줍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예는 일회성 행위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예기는 예를 통해 사람 사이의 반복적이고 안정된 상호작용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단기적 친절을 넘어,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지향하는 방식입니다.

회식 자리에서 신입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고, 개개인의 취향과 상황을 존중하는 것도 예입니다. 회의 시간에 발언 기회를 공평하게 나누고, 성과 발표 때는 이름을 빠뜨리지 않는 것 또한 예입니다. 이메일 작성 시 존중의 표현을 잊지 않고, 타인의 아이디어에 경청하며 피드백을 주는 것도 모두 예의 확장된 실천입니다.

기업 사례로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예의 기반으로 다듬은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연차나 직급보다 아이디어와 태도의 존중을 우선하는 피드백 체계를 운영하며, 예를 형식이 아닌 실천적 철학으로 자리 잡도록 강조합니다. 이와 함께 ‘경청 중심 회의’, ‘사전 아젠다 공유’, ‘동의 없는 야근 금지’ 등의 세부 규범을 마련해 구성원 간의 상호 존중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예의 철학은 사람 중심 조직 문화를 가능케 합니다

예기가 말하는 예는 고루한 전통이나 강제된 형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을 존중하고 나를 절제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조직화한 철학입니다. 오늘날 조직에서 예는 곧 정서적 안전감을 구축하고, 협업의 기반을 다지는 문화적 장치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조직문화는 추상적인 비전 선언문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구성원 간의 작고 구체적인 태도, 말투, 행동이 반복되고 공유될 때 비로소 문화가 형성됩니다. 『예기』는 그런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수천 년 전부터 강조해 온 텍스트입니다. 온보딩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의례이며, 그 의례는 예를 통해 완성됩니다. 고전 인문학의 통찰은 오늘날 조직에서 더 인간적인 관계와 더 신뢰받는 문화로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