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철학자들은 노동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다루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행복(Eudaimonia)"이며, 이는 탁월한 활동을 통해 성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생산 노동을 단순한 수단적 행위로 보았지만, 자기완성과 공동에 대한 기여가 결합된 활동은 인간답게 사는 데 핵심이라 여겼습니다.
반면 동양에서는 장자가 "장자" 내편에서 무위(無爲)를 언급하며 자연스럽고 억지 없는 삶의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일’ 역시 억지와 과욕이 제거된 상태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실천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일을 좇되 이익만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며, 목적보다 과정과 도덕적 태도를 중시했습니다.
이러한 고전적 노동관은 오늘날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도 깊은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단기 실적이나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일의 과정에서 어떤 가치를 실현하느냐가 브랜드의 신뢰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브랜드는 왜 '일하는 방식'을 설명해야 하는가
오늘날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함께 선택합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브랜드의 워크컬처’에 주목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내부 직원에 대한 대우, 협업 방식, 성장 구조, 윤리적 고용 등이 브랜드 신뢰에 직결되고 있으며, 이는 곧 구매 결정과 브랜드 충성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예컨대 브랜드가 ‘사내 야근을 미덕으로 여긴다’거나 ‘성과주의로 경쟁을 조장한다’는 인식이 퍼지면,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됩니다. 이처럼 브랜드의 일하는 방식은 더 이상 내부 사정이 아니라, 대외적 메시지가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전 인문학이 전하는 ‘일의 의미’를 현대 브랜드가 다시 고민하는 것은 단순한 철학적 유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고전의 노동관이 오늘날 브랜드에 주는 실천적 메시지
고대 철학자들의 노동에 대한 사유는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를 브랜드 경영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지침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무엇을 하는가’보다 ‘왜 하는가’를 명확히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위는 목적을 지니며, 최상의 행위는 공동선을 추구할 때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브랜드도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니라, 세상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철학은 내부 구성원의 동기부여는 물론 소비자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기초가 됩니다.
둘째, 과잉경쟁과 과잉노동의 함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장자는 끊임없는 경쟁과 속도감에 의해 스스로를 소진하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했을 것입니다. 브랜드 내부의 ‘일하는 문화’가 구성원을 소모시키는 방식일 경우, 이는 조직 생산성의 단기적 상승을 넘어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신뢰도까지 해칠 수 있습니다. ‘덜 하지만 더 깊게(less but better)’ 일하는 방식은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냅니다.
셋째, 공동체적 관점을 경영에 통합해야 합니다. 공자와 맹자는 일의 목적을 타인의 삶에 유익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데 두었습니다. ‘회사의 성장이 직원의 성장과 연결되는가’, ‘고객의 시간과 에너지를 존중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브랜드 행동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에서 강조한 ‘도덕적 노동’은 바로 이 공동체적 시각에서 비롯됩니다.
고전 인문학의 노동관을 반영한 현대 브랜드 사례
고전 인문학의 노동 철학을 반영하여 브랜드의 워크컬처를 설계한 현대 브랜드 사례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베이스캠프(Basecamp)라는 조직은 ‘조용한 일터(Silent Workplace)’라는 독특한 철학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불필요한 회의, 과도한 커뮤니케이션, 지나친 야근을 전면적으로 지양하며, “직원은 일보다 삶이 우선이며, 집중해서 조용히 일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장자의 ‘자연과 조화롭게 일하는 태도’와도 일맥상통하며, 과하지 않은 일, 억지 없는 진행이라는 관점을 실현한 조직 운영 방식입니다.
또한 네덜란드의 의류 브랜드 스튜디오 루포(Slow Studio LUPO)는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한 정직한 시간’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량 생산과 예약 주문만을 고집하며, 과잉 노동과 생산에 반기를 듭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절제된 목적과 품위 있는 행위’를 기업 경영에 반영한 좋은 예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일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제품과 고객 경험 전반에 걸쳐 실천하고 있습니다.
일의 본질을 묻는 철학이 곧 브랜드의 방향이 된다
고전 인문학은 일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집니다. ‘일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일해야 하는가’,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오늘날 브랜드가 스스로 정체성을 구축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이제 소비자도 브랜드에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고전은 이에 대한 답을 기술적 혁신이나 트렌드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 오래된 질문을 던져 근본적인 기준을 세우도록 합니다. 그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브랜드만이 신뢰를 얻고, 오랜 시간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철학이 있는 브랜드는 결국 철학 있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터에서 일하는 구성원, 그런 브랜드를 선택한 고객은 그 브랜드와의 관계를 더 깊게 형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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