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책』의 모사 전략으로 배우는 조직 내 설득 기술과 영향력 있는 리더십
중국 전국시대의 외교 전략서인 『전국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설득과 지략의 집대성이었습니다. 전국 시대는 제후들이 끊임없이 연합과 반목을 반복하던 시대였으며,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국은 유능한 책사를 영입하여 전략을 모색했습니다. 전국책은 이 책사들의 생생한 언행과 그들의 설득 방식, 심리전, 기민한 외교 전략을 기록한 귀중한 고전입니다.
오늘날의 조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시장 환경, 빠른 기술 변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리더는 구성원, 고객,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할 수많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전국책은 고전 인문학의 틀 안에서 설득과 영향력의 본질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합니다. 단순히 논리적인 설명을 넘어, 상대의 심리, 상황, 언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전체적인 전략 설계’가 요구됩니다.
설득의 타이밍: 상황을 읽는 눈을 길러라
탁월한 설득은 말의 내용보다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전국책 속 책사들은 기회를 기다리는 데 능했으며, 성급히 의견을 내기보다는 먼저 상대의 기분, 분위기, 흐름을 세밀하게 관찰하였습니다. 진나라의 책사 장의는 “먼저 마음을 얻은 후 말을 꺼내라”고 말했는데, 이는 설득의 시작점이 '정보 제공'이 아니라 '정서적 맥락 설정'임을 말해줍니다.
현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 중 누군가의 반대가 감지되는 순간, 설득의 메시지를 강행하기보다는 맥락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고전 인문학에서 강조하는 ‘시의(時宜)’는 리더가 상황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잣대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설득의 타이밍을 읽고, 말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상대의 욕망을 건드리는 전략적 화법
설득은 논리를 넘어 감정과 욕망을 겨냥해야 합니다. 전국책의 책사들은 논리적 정당성뿐 아니라, 상대가 갖고 있는 욕망·두려움·자존심을 세밀히 분석하여 언어를 구성했습니다. 예컨대 연나라의 책사 수연은 적국의 왕에게 직접 이득을 주기보다, 자신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을 막아냈습니다.
조직 내 설득도 동일한 원리를 따릅니다. 단순히 이익을 설명하는 것보다, 구성원의 불안감 해소, 승진에 대한 기대, 팀 내 인정 욕구 등 감정의 실체를 이해하고 접근할 때 설득의 힘이 배가됩니다. 고전 인문학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인의(仁義)’와 ‘이익(利)’ 사이에서 균형 있게 조율하라고 가르칩니다. 결국 영향력 있는 리더는 인간 내면의 동기를 움직이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입니다.
언어의 정밀도: 한 마디가 조직 문화를 바꾼다
전국책에 등장하는 책사들의 언변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과 정밀함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단 몇 마디의 문장으로 상대의 의심을 풀고, 복잡한 국면을 반전시키는 기술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언어의 정밀함은 현대 조직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리더의 말 한마디가 팀 전체의 사기와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말에 여운이 있고, 의미가 깊으면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보냅니다. 고전 인문학은 언어를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도(道)를 담는 그릇’이라 보았습니다. 리더의 언어는 조직 문화의 시작점이 되며, 언어의 질이 곧 조직의 품격을 말해줍니다.
반대를 돌파하는 지혜로운 설득 전략
설득의 과정에서는 언제나 반대와 마주치게 됩니다. 전국책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전략이 소개되며, 이 중에는 직접적인 설득보다 ‘간접 우회’ 방식이 특히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초나라의 책사 굴원은 국왕을 직접 설득하지 않고, 그의 주변 신하를 먼저 포섭해 간접적으로 왕의 결정을 유도했습니다. 현대 조직에서도 변화 추진 시 구성원의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간접 설득, 영향력 행사 전략이 필요합니다. 고전 인문학은 이를 ‘부쟁(不爭)’의 미덕으로 강조하며, 부드럽지만 단단한 태도가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말합니다. 갈등 상황에서 정면 돌파가 아닌 우회로를 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략적 리더의 설득입니다.
이익의 구조를 재구성하는 설득 기술
설득은 상대의 입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바뀌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전국책 속 책사들은 주어진 조건 내에서 상대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도록, 이익의 구조를 재편하였습니다. 현대 조직에서도 ‘이익 재구성’은 중요한 설득 기법으로 활용됩니다. 단순히 상대의 손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자발적 선택을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부서 간 협업 갈등에서, 공동 성과 보상을 설계하면 갈등은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이는 고전 인문학에서 말하는 ‘형세(形勢)’를 읽고 활용하는 지혜이며, 설득은 단순한 언어의 싸움이 아니라 구조적 설계임을 보여줍니다.
설득의 윤리성: 영향력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다
전략적 설득은 종종 ‘조작’이나 ‘조종’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국책은 상대의 존엄과 장기적 신뢰를 고려하는 방식으로 설득을 전개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진정한 영향력은 일시적 승리가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을 바탕으로 형성됩니다.
조직 내에서도 설득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 신뢰를 쌓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한 번의 거래’가 아닌 ‘지속 가능한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설득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닌 인격과 태도의 문제가 됩니다. 고전 인문학이 강조하는 ‘신(信)’과 ‘의(義)’는 바로 이 윤리적 기반을 의미합니다. 전략과 철학이 결합할 때, 리더는 말로써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고전의 지혜, 오늘의 리더십에 다시 살아나다
전국책을 통해 설득과 영향력의 기술을 돌아보는 일은 단순한 고전 읽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고전 인문학의 눈으로 사람과 관계, 힘과 소통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며, 현대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제공합니다.
리더십이란 본질적으로 ‘사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종종 가장 오래된 책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전국책』을 통해 우리는 언어, 심리, 윤리, 전략을 아우르는 총체적 리더십의 면모를 배울 수 있으며,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조직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