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인문학과 현대 비즈니스

고전 인문학과 비즈니스 전략: 『상서』에서 배우는 윤리 중심 비전 설계

forget-me-not2 2025. 7. 17. 21:57

현대의 기업 비전은 단순한 목표나 슬로건이 아닙니다.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미래상이며,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입니다. 고대 중국의 정통 경전 『상서(尙書)』는 하(夏), 은(殷), 주(周) 삼대에 걸친 정치적 이상과 치국(治國)의 철학을 담고 있으며, 이 안에는 조직의 방향성과 공동체의 윤리를 아우르는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고전인문학과 비지니스 전략


상서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린 뒤 천명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무실정신(無失精神), 일심동체(一心同體)"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즉, 한 사람의 비전이 아닌 공동체 모두의 윤리적 공감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조직에서도 비전을 단순히 경영진이 정하는 방향이 아닌, 구성원과 함께 정립하고 실천해야 하는 윤리적 약속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조직의 비전이 단순한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약속으로 작용하려면, 이러한 윤리적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윤리를 바탕으로 한 비전은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장기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며, 조직의 정체성과도 직결됩니다.

 

조직의 비전은 구성원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리더 중심의 비전 설계는 종종 구성원의 몰입을 저해합니다. 상서에 담긴 정치 철학은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계획도 공허하다고 가르칩니다.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천하를 얻어도 소용이 없다"는 구절은, 오늘날 기업이 비전을 수립할 때 일방적인 선언이 아닌 참여와 수렴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시사합니다.

대표적 사례로 사우스웨스트 항공(Southwest Airlines)은 모든 비전과 가치 선언을 직원과의 워크숍과 내부 토론을 통해 도출하였습니다. 그 결과 구성원 스스로가 비전의 주체로 참여함으로써 실천 가능성과 몰입도를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사례로는 카카오를 들 수 있습니다. 카카오는 '모바일을 넘어 더 나은 세상으로'라는 비전을 설정하며, 비전 수립 초기부터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사업별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세부 목표를 조정해 왔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구성원에게 단지 수동적인 역할이 아닌, 조직 비전의 공동 설계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이처럼 고전이 말하는 민심 존중 철학은 비전 설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공동체적 신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윤리 없는 비전은 공허한 구호에 그칩니다

고대 정치에서 천명은 도덕 위에 존재해야 했습니다. 상서는 이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며,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은 오래 유지될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이는 현대 조직 비전에도 적용됩니다. 비전이 아무리 창대하더라도 도덕적 공감대를 잃으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고전은 이미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비전은 도덕적 책임과 연결되어야 하며, 조직의 행동 역시 이에 부합해야 합니다. 예컨대,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Unilever)는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실제 제품 생산 과정에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공정 거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윤리적 실천은 비전의 진정성을 담보하며, 사회와 시장 모두에게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됩니다.

최근 주목받는 ESG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환경 보호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기업이 실질적인 실천과 투명한 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구체적인 윤리 기준을 확보해야 비전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전이 제시하는 도덕 중심의 통치 원리는 오늘날 윤리 경영의 설계에도 유효합니다. 윤리의 빈틈을 메우지 못한 비전은 결국 단명하거나 외부로부터 신뢰를 잃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도덕성과 실천 가능성을 겸비한 비전 설계는 지속 가능한 조직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중심의 비전이 조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듭니다

공자의 유교보다 앞선 시기에 형성된 상서는 덕치(德治)를 정치의 중심으로 강조하며, 구성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 통치의 핵심이라 봅니다. 이는 조직의 리더가 비전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도덕으로 공동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고전적 교훈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철학은 유효합니다. 기업이 단지 시장 점유율이나 수익률을 비전으로 삼을 때, 구성원은 방향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발성을 잃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를 포함한 포괄적 비전은 조직의 지속 가능성과 내적 결속을 강화합니다.

미국의 아웃도어 기업 REI는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자연과의 연결”이라는 공동체 중심 비전을 세우고, 블랙프라이데이에 매장을 닫고 직원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실천으로 구성원과 소비자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이익보다 구성원과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방향이 조직에 어떤 신뢰를 안겨주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이러한 비전은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스스로의 일에 대해 더 높은 책임감을 갖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고전은 방향을 제시하고 윤리를 되살립니다

고대 경전은 시대를 초월해 조직 운영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상서는 단지 고대 정치 문서가 아니라, 조직이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모으고 운영해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서이기도 합니다. 특히, 위기나 혼란의 시대에 ‘천명’과 ‘도덕’을 기준 삼아 질서를 복원하는 과정은, 오늘날 조직이 혼돈 속에서 다시 방향을 찾고자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급변, ESG 요구의 확대, Z세대의 가치지향적 노동 참여 등 복합적인 경영 환경에서 기업은 단지 전략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상서가 강조하는 ‘도덕 중심의 통치’는, 현대 조직에서 ‘윤리 기반의 경영’으로 자연스럽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비전은 곧 철학이며, 그 철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윤리가 있습니다. 고전 인문학은 조직의 장기 생존을 위한 도덕적 나침반이며, 『상서』는 그 방향성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실천해 온 고전의 하나입니다. 고전은 과거의 지혜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선택과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상서의 정신을 오늘날 조직에 적용하는 일은 단순한 경영 전략을 넘어, 사람 중심 조직문화를 향한 철학적 실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