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인문학과 CSR 전략: 정약용에게 배우는 책임 있는 조직 경영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행정, 법률,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방대한 저술을 남긴 고전 지성입니다. 그의 사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용적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공공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철학적 기반을 지녔습니다. 오늘날 기업들이 강조하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ESG 경영의 사회(S) 요소는 정약용의 사상과 깊은 접점을 가집니다.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에서는 지방 행정관에게 공공성을 갖춘 통치를 요구하며, 민본(民本) 정신을 강조합니다. 이 개념은 현대 기업이 소비자, 지역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책임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즉, 지속 가능한 경영의 출발점은 조직 외부를 향한 윤리적 시선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고전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선언이 아닌, 실제 의사결정 구조 속에 공공적 관점을 통합하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공공성과 투명성은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만듭니다
정약용이 강조한 공공성과 청렴성은 오늘날 투명 경영과 윤리경영의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흠흠신서』에서는 행정관의 재판 태도와 절차적 정의를 강조하며, 공동체의 신뢰 회복은 공정한 시스템 설계에서 출발해야 함을 말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로, 정직하고 예측할 수 있는 운영 체계가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간의 신뢰를 형성하는 기반이 됩니다.
이러한 철학은 기업 경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컨대 국내 유통기업 아모레퍼시픽은 친환경 원재료와 포장재를 활용하여 소비자 신뢰를 얻고 있으며, 내부 감사 체계 강화를 통해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공헌 활동의 투명한 회계 공개, 외부 평가 도입 등을 통해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내재적 시스템 구축이라는 점에서 정약용의 실용적 공공 철학과 조응합니다.
인재의 도덕성과 역량을 함께 보는 조직 문화
조직의 인재 채용 기준은 곧 조직의 철학을 드러냅니다. 정약용의 저서 『경세유표』에서 그는 “능히 일할 뿐 아니라, 사람됨이 바르지 않으면 기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능력주의를 넘어서, 도덕성과 책임감을 갖춘 인재를 중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채용 과정이 기술적 역량뿐 아니라 인성, 조직 적합성, 사회적 태도까지 고려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기술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채용 과정에서 기술적 역량은 물론, 협업 능력, 포용력, 사회적 책임 의식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Inclusive Leadership’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성과 공공성을 내면화한 리더를 양성하려는 시도는, 조직이 곧 공동체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정약용의 관점을 현대적으로 실현한 사례입니다. 이는 또한 리더의 모범적 태도가 전체 조직의 윤리적 방향성을 형성한다는 고전적 교훈을 뒷받침합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사회적 기업의 모델
정약용은 국가의 이상이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전론』과 『여유당전서』 등에서 그는 지역 주민의 생계, 자립, 복지를 강조하며, 공공 행정의 실천 현장으로서 지역을 중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지방 분권을 넘어서, 지역 맞춤형 정책과 책임 있는 돌봄 체계를 마련하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회적 기업이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더벤티는 지역 청년 창업 지원,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등 지역 맞춤형 사회공헌을 지속하며 지방 공동체와의 상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고객 충성도와 브랜드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선순환적 비즈니스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 또한 큽니다. 이는 단순한 기부 활동을 넘어, 정약용이 말한 바와 같이 "공공의 가치를 조직 시스템에 내재화하는 경영"의 예시입니다.
조직의 책임은 선택이 아닌 존속의 조건입니다
오늘날 CSR 혹은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조직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내면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약용은 단기적 성과보다 도덕성과 실천을 조화롭게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비즈니스의 윤리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정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ESG 평가 기준에서 사회(Social) 부문은 단순한 이벤트나 이미지 홍보가 아닌, 조직 구조에 얼마나 공공성이 녹아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를 위해 다수의 기업이 ESG 위원회를 신설하고, 윤리 헌장을 제정하며, 사회적 가치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구조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요소는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강한 신뢰를 형성하며, 기업의 평판과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는 목민심서에서 공직자에게 "백성을 항상 먼저 생각하라"고 당부한 정약용의 통찰이, 현대 조직 전략으로 계승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전은 공공을 위한 전략의 뿌리가 됩니다
실용과 윤리, 제도와 철학의 균형을 통해 공공 경영을 완성하고자 했던 정약용의 사상은 오늘날 기업 경영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고전 인문학은 조직의 존재 목적이 단지 이윤 창출이 아닌, 공동체 내 역할과 책임을 함께 묻는 프레임을 제공합니다.
기업이 CSR, ESG, 공유가치 창출(CSV)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 할 때, 정약용의 철학은 그 근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옛것을 따르되, 현실에 맞게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고전의 가르침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고전을 오늘에 연결할 수 있을 때, 조직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적 공감과 신뢰를 창출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