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인문학으로 구축하는 DE&I: 묵자의 철학과 현대 조직문화의 연결
오늘날 기업은 다양성(Diversity)과 포용(Inclusion)을 조직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단지 시대적 트렌드나 윤리적 표어가 아닙니다. 구성원의 배경, 성별, 성향, 세대, 관점을 수용하고 존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곧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전략적 선택입니다. 고전 인문학, 특히 『묵자(墨子)』에 담긴 겸애(兼愛)사상은 이러한 현대 조직문화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해 줍니다.
묵자는 춘추전국시대, 전쟁과 불평등이 만연하던 시기 “차별 없는 사랑”, 즉 겸애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가족이나 지인만을 사랑하는 '차별적 친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라고 말하며, 진정한 사회 정의는 포용에서 출발한다고 설파했습니다. 현대 비즈니스가 주창하는 DE&I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철학입니다.
겸애는 수직적 위계 대신 수평적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
묵자는 겸애의 실천이 단순히 도덕적 명제가 아니라, 사회 운영의 효율성과 질서를 가능케 하는 전략임을 강조합니다. 겸애는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조직 전체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협력과 신뢰의 문화를 조성하는 기반이 됩니다.
글로벌 보험기업인 액센츄어(Accenture)는 다양성과 포용 전략을 인사 시스템에 완전히 통합하고 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팀은 다문화적, 다세대적 구성을 원칙으로 하며, 성과 평가에서도 협력적 태도와 포용 역량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 결과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심리적 안전감 속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실제 프로젝트 성과도 높아졌습니다. 이는 묵자가 말한 겸애, 즉 '내 사람만 챙기는 조직'에서 벗어나 모두를 조직의 자산으로 대하는 철학이 실현된 사례입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단순한 윤리적 시혜가 아니라,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와도 직결됩니다.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는 팀일수록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적 접근이 강화되며, 급변하는 시장에서도 민첩한 대응이 가능합니다. 묵자의 겸애가 강조하는 보편적 존중은, 오늘날 경쟁력 있는 기업이 갖춰야 할 핵심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진정한 포용은 공정한 구조에서 시작됩니다
겸애를 실현하기 위해 제안했던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비차별적 기준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황과 기준에서 평가받아야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선다고 본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조직이 채택하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 성별 중립적 보상 정책, 포괄적 복지제도 등과 연결됩니다. 대표적 예로, 글로벌 뷰티 기업 로레알(L'Oréal)은 인재 채용과 보상 정책 전반에 '포용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입사 지원 단계에서 이름, 성별, 나이 등의 정보를 비공개로 처리하고, 평가 기준을 '경험과 역량 중심'으로 통일한 것입니다. 또한 고위 관리자 승진 과정에서도 젠더, 인종, 국적에 대한 선입견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이는 묵자가 말한 겸애의 원칙이 기업의 제도 설계로 구체화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일부 조직은 내부 보상이나 리더십 승계 계획에도 포용성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 다양성 확보를 넘어, 장기적인 리더십 다변화와 조직 전체의 관점 전환을 이끄는 구조적 기반이 됩니다. 고전 인문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공정은 단지 규칙의 동일성이 아니라, 기회의 접근 가능성을 보장하는 질서라는 점에서 오늘날 기업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문화는 철학이 일상화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묵자의 겸애는 개인의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는 겸애가 실천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현대 조직문화에서도 포용이 정책이나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 행동과 언어, 소통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과 일치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통기업 타겟(Target)은 포용의 문화를 정기적인 '공감 워크숍'을 통해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구성원 각자의 배경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팀 내 신뢰와 소통을 높이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묵자의 말처럼, 겸애는 말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경험하고 반복할 때 문화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일부 기업은 포용적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언어 가이드라인'이나 '포용 언어 툴킷'을 제공합니다. 이는 사내 메일, 회의, 협업 도구에서의 표현 하나하나가 구성원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겸애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실천 가능한 언어와 행동으로 구체화될 때 그 힘을 발휘합니다.
포용은 이윤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에서 출발합니다
묵자는 겸애를 실천하는 이유로 '하늘의 뜻'이나 '인류애'를 들기도 했지만, 그 근저에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차별과 배제,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가 결국 사회를 무너뜨린다고 보았으며, 상호 신뢰와 포용만이 공동체를 존속시킨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S(Social) 요소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포용과 다양성을 실현한 조직일수록 더 창의적이고, 더 건강하며, 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간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묵자의 겸애는 이런 경영 전략에 인문학적 깊이를 더해주는 프레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MZ세대가 중추로 자리 잡은 오늘의 조직에서는 윤리와 가치, 관계의 진정성에 대한 민감도가 높습니다. 구성원 각자가 존중받는 환경은 단지 이직률을 낮추는 요소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명성과 조직 신뢰 자산을 형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작용합니다.
고전은 오래된 해답이 아니라, 오늘의 질문에 대한 깊은 시선입니다
묵자의 겸애는 단순히 사랑하라는 윤리적 외침이 아닌 조직을 설계하고, 사람을 평가하며, 문화를 설계하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통찰입니다. 고전 인문학은 이렇게 현대 비즈니스의 구체적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과제가 여전히 조직의 고민이라면, 이제는 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시점입니다. 그 이유는 비록 내용이 오래된 고전이지만, 오늘을 위한 가장 실용적인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