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예학으로 디자인하는 현대 기업의 조직문화
오늘날 많은 기업이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소통 문제, 세대 간 갈등, 사내 괴롭힘, 무례한 메일과 회의 태도 등은 업무 성과 이전에 팀워크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기술이나 제도만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종종 실패로 돌아가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 곧 ‘예절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중국의 유학자 순자(荀子)가 말한 ‘예(禮)’ 개념은 오늘날 기업 문화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순자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며, 그 본성을 다스리기 위해 문명화된 규범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예를 단순한 형식이나 절차가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고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 장치로 보았습니다. 순자의 예(禮) 개념을 오늘날 기업의 조직 예절과 커뮤니케이션 매너에 적용함으로써, 보다 성숙하고 효율적인 조직문화를 디자인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길들이는 규범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순자』 「성악편」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지니고 있으니, 그대로 두면 다툼과 혼란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예(禮)’를 만들어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의 역할은 오늘날 조직 내에서의 기본 규범과도 연결됩니다.
현대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의 배경, 가치관, 세대가 다양해지면서, 개인의 언행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순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구성원은 개인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표현을 절제하고, 조직이 존속하기 위한 일정한 행동 규범을 익히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단지 예의 바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신뢰를 위해 필요한 '의도적 태도 조정'을 의미합니다.
예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커뮤니케이션 매너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예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메일의 말투, 회의에서의 발언 순서, 상사와의 대화, 후배에 대한 피드백 방식 등은 모두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예의 여부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은 내부 메신저에서 ‘답장이 늦어도 괜찮습니다’라는 자동 서명을 권장합니다. 이는 순자의 예 개념에서 보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형식적 표현으로, 조직 내 긴장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순자는 말했습니다. “예란 서로를 해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며,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이전에 예의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합니다.
감정의 표현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는 도구
일부에서는 예를 과거의 권위적 질서나 위계 구조의 유물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억압적 수단이 아니라, 감정을 조화롭게 조율하고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는 “예는 분노를 가두되 억누르지는 않고, 슬픔을 드러내되 도를 넘지 않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현대 조직에서도 이 개념은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드백 과정에서 구성원이 실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예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톤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들이 ‘비폭력 대화’나 ‘공감적 피드백’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이는 고대의 예가 현대의 감성지능(EQ)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문화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하는 형식
순자는 예를 인간이 만든 ‘인위(人爲)’의 결정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연에 맡기면 혼란이 생기므로, 사람이 스스로 규범을 만들고 그것을 지속해서 실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기업이 조직문화나 행동 강령을 단지 분위기나 전통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명확한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함을 뜻합니다.
예컨대 글로벌 기업 애플(Apple)은 신입사원 온보딩 과정에서 ‘말하는 방식’, ‘회의 시간 준수’, ‘이메일 작성 원칙’까지 세세하게 가르칩니다. 이는 업무 능력과는 별개로, 조직의 예(禮)를 내면화시키기 위한 프로세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형식은 형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가치를 실천하는 도구이며, 구성원의 자율성을 보완하는 구조적 장치입니다.
수직적 위계 대신 상호 존중의 기반
순자의 예는 위계적이기보다는 역할과 상황에 따른 조화를 중시합니다. 그는 군자는 군자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질서가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오늘날 역할 기반의 책임과 존중 문화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나 상호 존중을 받되, 역할에 맞는 예절과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존중과 유쾌함의 조직문화’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내부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수직적 명령 체계보다는 역할에 따른 책임과 배려 중심의 소통 구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장과 객실 승무원 간에도 직책보다 이름을 먼저 부르고, 수평적 대화 방식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이는 순자가 말한 예의 본질처럼, 형식적 위계보다 상호 이해와 질서의 조화를 우선하는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전 예학에서 찾은 실천적 조직문화
순자의 예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조직 내 인간관계를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철학적 자원이 됩니다. 예는 단순한 인사 예절이 아니라, 감정과 욕망을 조율하고 공동체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술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매너, 피드백 방식, 회의문화, 상하관계 등은 모두 예라는 틀 안에서 설계되고 실천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업이 조직문화를 개선하려 한다면, 고전에서 말하는 예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순자는 “예는 길이요, 인간은 그 길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한 공존의 방식입니다. 이제 조직문화도 기술과 제도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위한 철학적 기반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