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우는 협력적 조직문화
오늘날 기업이 직면한 큰 문제 중 하나는 협력의 부재입니다. 개별 부서의 이해충돌, 팀 간 경쟁, 상하 간 소통 단절 등은 성과를 가로막고 조직 문화를 병들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력을 촉진하고 신뢰 기반의 조직 문화를 정립하는 일은 단순한 HR 전략을 넘어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됩니다. 이때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의 고찰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인간은 ‘폴리스를 이루는 존재’, 곧 공동체적 존재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고전 인문학의 통찰은 협력 중심의 조직 설계에 탁월한 철학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고대 도시국가의 이상적 공동체를 상상한 그의 사상을 오늘날의 기업 조직에 적용하면 협력적이고 지속 가능한 구조의 설계가 가능합니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zōon politikon)"이라 정의하며, 공동체와 분리된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공동체론은 단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선(善)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관계망을 지향합니다. 기업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 구성원은 단지 생계를 위해 함께 모인 집합이 아니라, 각자의 역량이 시너지를 이루고, 더 나은 결과와 성장을 위해 협력하는 유기체여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공동체란 그 구성원 각자의 선(善)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조직이 구성원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의 이익을 위한 조율과 협력을 이끌어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공동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기업의 인사, 조직문화, 리더십이 지향해야 할 철학적 기준이 됩니다.
공동선을 위한 목적 공유가 협력의 시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공동체가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가족, 마을, 국가 모두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좋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개념은 기업조직에서도 핵심이 됩니다. 조직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선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동의 목적’을 제시해야 합니다. 단순한 이윤이나 실적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 일을 함께 하는가’라는 명확한 비전과 가치를 제시할 때 협력이 일어납니다. 특히 MZ세대 이후의 구성원은 자율성과 의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공감할 수 있는 목적 제시가 더욱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시장 점유율 1위 달성"이 아니라, "고객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솔루션 제공"이라는 목적이 공유될 때, 부서 간, 개인 간 협력의 동기가 생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론은 협력의 동기가 개인의 이해를 넘는 ‘더 큰 의미’에 기반할 때 진정한 시너지가 발생한다고 강조합니다.
조직 내 역할과 책임의 조화가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든다
협력적 조직을 설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는 ‘역할의 조화’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 공동체는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되, 그 역할이 서로 보완적일 때 가장 안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기업에서의 역할 분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협력은 ‘좋은 관계’ 이전에 ‘좋은 구조’에서 시작됩니다. 각 부서와 팀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며,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협력은 혼란과 충돌로 변질됩니다. 예를 들어, R&D, 마케팅, 영업, 고객지원 등 각 부서가 상호작용할 때 자신의 역할만을 고수하면 충돌이 발생하지만 각자의 전문성과 기여도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할 때 협력은 자연스럽게 촉진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는 ‘역할의 덕’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며, 단순히 기능적 분업이 아니라 윤리적 책임까지 포함한 협력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공정성과 신뢰는 협력 조직의 지속성을 결정짓는다
협력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선 두 가지 기반이 필요합니다. 바로 공정성과 신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주는 것’으로 설명하며, 공동체의 지속성은 공정한 분배와 상호 신뢰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조직에서도 성과에 비례한 보상, 공정한 평가,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지 않으면 협력은 쉽게 무너집니다. 누군가는 일하고, 누군가는 빛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는 혜택만 누리는 조직은 결국 갈등의 온상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평등은 가장 강력한 공동체 파괴자"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는 기업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협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리더는 누구보다 먼저 공정함을 실천하고, 불합리를 해소하는 구조를 정비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신뢰 기반이 없다면, 조직은 아무리 좋은 목표를 가져도 쉽게 분열되고 해체됩니다.
리더는 협력의 문화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를 하나의 ‘건축물’로 비유하며, 이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핵심은 훌륭한 ‘정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기업조직에서 이 역할은 리더가 맡게 됩니다. 협력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명령 전달자’가 아닌 ‘문화 설계자’로서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팀 간 협업을 촉진하는 회의체계, 공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피드백 시스템, 부서 간 연계를 돕는 기술 인프라 등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책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의 최고 덕목을 ‘실천적 지혜(phronēsis)’라 불렀는데, 이는 상황을 읽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능력입니다. 오늘날의 조직 리더에게도 이 덕목이 그대로 요구됩니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사람과 관계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인 조직 설계를 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가 협력적 기업 문화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고전 인문학은 협력 조직의 철학적 뿌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론은 단순히 과거 철학자의 사변이 아닙니다. 협력과 신뢰를 중시하는 오늘날 기업이 꼭 되새겨야 할 근본적인 철학입니다. 빠른 기술 변화,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진정한 경쟁력은 구성원 간의 협업과 조직의 응집력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협력적 힘’은 일시적인 워크숍이나 분위기 전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인간의 본성을 조직에 반영하려는 철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고전 인문학은 바로 그 출발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조직 내 협력의 구조와 문화, 리더십의 역할까지 총체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합니다. 고전을 통해 조직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더 나은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전략입니다.
협력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에서 시작된다
협력은 단순한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철학에서 출발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역할의 조화, 목적의 공유, 신뢰 기반의 공정성이라는 3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이는 오늘날 기업이 협력 문화를 설계할 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입니다. 고전 인문학은 이러한 조직 철학을 뿌리 깊게 이해하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게 해줍니다. 협력이 저절로 일어나는 조직은 없습니다. 그것은 설계하고 운영하며 돌보는 철학적 사유의 결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론은 그 설계도를 제공하며, 협력적이고 지속 가능한 조직을 위한 가장 오래되고 실용적인 지침이 됩니다.